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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돌봄]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넓적다리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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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6회 작성일 24-02-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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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인간 본상을 탐구하며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 뉴기니 섬, 발리 등지의
오지 마을들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섬 주민들은 대추장이 죽었을 때처럼
닷새 동안 장례식을 거행하며 애도를 표했다.

특히 뉴기니 섬의 아라페시족과 문두구머족에 대한 미드의 연구는
인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두 부족은 동일한 섬에 살면서도 성향과 기질이 많이 달랐다.
아라페시족은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반면에,
문두구머족은 남자든 여자든 난폭하고 공격적이었다.
미드는 두 부족의 아이 키우는 방식에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아라페시족 엄마들은
아기를 그물 모양의 작은 가방(자궁 속 경험을 상징하는)에 넣어
몸 앞으로 안고 다니면서 아기와 계속 접촉하고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아기가 원하면 언제든 젖을 물렸다.

이에 반해 문두구머족은
거칠게 짠 불편한 바구니에 아기를 넣어
이마에 지탱한 끈으로 등 뒤에 매달고 다녔다.
자연히 아기는 엄마의 몸과 분리되어
아무 접촉도 할 수 없었고
엄마의 표정도 볼 수 없었다.
좀 더 큰 아기는 엄마의 길게 딴 머리카락을 붙잡고
등 뒤에 매달려 다녔다.

젖 먹일 때도 아라페시족은
앉아서 젖꼭지를 잘 물도록 배려하면서
젖 먹는 동안 지속적으로 등을 토닥여 주었다.

문두구머족 엄마들은
서서 한 팔로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다 보니 팔이 아파서
젖 주는 일을 금세 중단하고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아라페시족의 평화성과
문두구머족의 폭력성은
바로 '접촉'의 차이였던 것이다.

미드는 아라페시족의 특이한 현상 한 가지를 더 발견했다.
사냥하다가 다치면 치료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부족 사람들에게 상처 입은 것을 알려
위로를 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말하고 다니는 동안 고통을 잊을 뿐더러,
이웃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자신이 겪는 고통과 비교하며
사회적 치유 효과를 거두었다.
한 사람이 상처 입은 감정을 집단에 표현하고
집단은 그 감정에 호응함으로써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는 이런 행동 방식을
미드는 '아라페시 현상'이라고 불렀다.

마거릿 미드의 강의에 참석한 적 있는
어느 의사는 다음의 중요한 일화를 전한다.
미드는 한 학생으로부터
'문명의 첫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학생은 답변으로 오래된 토기나 낚싯바늘, 간석기 등의 유물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드는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발견한 1만 5천 년 된 뼈가
문명의 증거라고 대답했다.
그 뼈는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인간의 넓적다리뼈'였다.

넓적다리뼈는 엉덩이와 무릎을 연결하는 인체의 가장 긴 뼈이다.
넓적다리뼈가 부러지면 현대 의술이 없는 사회에서는
다시 붙기까지 6주 이상 걸린다.
고대의 야생 환경에서 넓적다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위험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을 뿐 아니라,
강에 가서 물을 마시거나 먹을 사냥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배회하는 맹수의 먹잇감이 되거나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넓적다리뼈가 다 낫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부러진 다리로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은 없다.
적자생존 법칙만이 지배하는 곳, 혹은
몸이 약하거나 다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사회에서는
부러졌다가 붙은 흔적이 있는 넓적다리뼈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러진 넓적다리가 다시 붙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그 낙오자의 상처가 낫는 동안
돌봐주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힘든 상황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당한 동료의 곁을 지켜주었으며,
상처를 동여매 주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사냥해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음을 말해 준다.
이렇듯 자신만의 생존을 도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돕는 행동이
문명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인류학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거릿 미드는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초고속 인터넷과 최고 성능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해서
문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돌도끼로 싸우는 것은 야만이고
핵탄두 미사일로 전쟁을 하는 것이 문명은 아니다.

우리가 오해하듯이 문명인의 증거는 그런 외부의 도구에 있지 않은 듯하다
고난에 처한 동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가 역경을 이겨 내도록 돕는 것이 문명인의 첫 신호이다.
그리고 그 공감과 연민의 근육이 인류 문명을 지금까지 지켜 주었다.

나는 누구의 부러진 넓적다리를 치료해 주었는가?
상처 입은 어떤 영혼의 다리를
공감의 손으로 싸매 주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부축했는가?

삶에서 그렇게 한 영역만큼 나는 문명인이며
외면한 영역만큼 야만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대전제로서,
사람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 만큼
문명인이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中


- 사진출처: Beverly Joubert(자세히 보면 얼룩말이 보인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선정 2019년 올해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