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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돌봄] 우리는 한때 얼마나 옳았는가? 또 나중에 돌아보면 얼마나 틀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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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2회 작성일 24-01-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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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주름살이 는다고 고민하는 여성에게 내가 말했다.
"무의미한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 거예요."
그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그녀가 반박했다.
"그럼 작가님은 왜 이마에 주름살이 있으신가요?"
"연륜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녀는 얕게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마음으로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대화를 잊어버릴 정도로 한참이 지난 후, 그녀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지난번 지적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로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무리 해도 생각들을 멈출 수가 없어요. 어떤 생각은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내가 정상이 아닌 게 맞죠?"

나의 지적 때문에 그녀는 무의미한 생각을 더하게 된 것이다.
나는 농담삼아 한 말을 급히 철회하며, 그렇지 않다고, 사람은 누구나 그 정도는 생각하며 산다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너무 많은 생각으로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라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 과잉이 비정상을 넘어 정신병적인 상태에 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는 삶에서 조언을 필요로 하지만,
조언이 때로는 날개가 아니라 밧줄처럼 자신을 묶을 수도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에고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진단하고
'너는 이것이 문제야.' 하고 조언을 해 줌으로써 자기 우월감을 갖는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불교에 대해 잘 아는 정신과의사가 초보 상담의로 일할 때의 일이다.
2주간의 명상 수련회를 마친 젊은이가 그를 찾아왔다.
수련 후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지기는커녕 더 불안하고 산만해졌다는 것이었다.
총명한 젊은이였으나 정신과 의사들이 '사고장애'라고 부르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조현병의 초기 증상 조짐이 엿보였다.

의도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단 한 번의 만남인데도 의사는 젊은이의 상태에 성급하게 반응했다.
하루 일과의 마감시간이 되어 정신적 피로 때문에도 평소보다 더 충동적으로 진단을 내렸다.
의사는 말했다.
"당신은 조울증이라는 기저 질환이 있는 것 같다. 명상 수련이 그 증상을 표면에 떠오르게 했다.
이것이 당신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두지 말고 바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책장에서 조울증에 관한 전문서적을 꺼내 보여 주며,
조울증에 좋은 치료법이 있으니 인생을 망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병을 가지고 있다고 안심시키면서.

사실 그런 진단을 뒷받침할 증거는 희박했다.
그 젊은이는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단지 처음 경험하는 수련회의 침묵과 감각 억제에서 혼란을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의사는 그 사실을 간과하고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조언은 옳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젊은이는 크게 절망해서 떠났다.
다음 날, 젊은이의 어머니가 의사에게 전화해서 항의했다.
"어떻게 단 한 번의 상담을 근거로 그런 진단을 내릴 수 있죠?"
그녀의 말이 옳았다. 의사가 사과했지만 다시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20년 후, 한 모임에서 의사는 그 젊은이의 어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그녀가 다가와 그의 성급한 진단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가를 상기시켰다.

의사가 다시 사과하며 그녀의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 밤 당신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아들이 말했어요. 그 의사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당신의 진단이 떠올라 인생을 더 힘들게 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극복해 가고 있어요."

의사는 20년 전에 자신이 덜 전문가처럼 행동하고, 덜 성급히 진단을 내렸다면
그 젊은이를 더 잘 도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옳은 것이,
다시 말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조언이
반드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 류시화 2024년 1월 12일자 산문(https://www.facebook.com/poet.ryushiva)



(그림 출처: Jeanie Toman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