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나눔터

[마음돌봄] 의지하고 의존하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34회 작성일 23-07-17 10:06

본문

2019년 12월 27일자 정지우 작가 산문



삶이란 혼자서 이겨내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었는데,
갈수록 그런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다.
삶은 너무나 철저히 서로 의존하는 일이고,
최후의 그 순간까지도 어느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청년 시절에야,
혼자 살았고, 혼자 돈 벌면서, 혼자 만족하고,
그렇게 영영 오로지 나로서만 살아간다고 믿었지만,
살아갈수록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타인이 필요하고,
서로를 도와야 하고, 서로 기댈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사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물어보고, 요청하는 일이
나에게 그리 익숙하진 않다.
그보다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고,
타인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타인도 나에게 의존하지도 않는
그런 단독자적인 생활 방식이 언제나 편했다.
그런데 지난 몇년간 내 삶이란
온통 여기저기서 내밀어주는 손길들로 점철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그럴수록,
나도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느낀다.
삶이란 홀로 고고하게 서있는 게 아니라,
서로 손을 부여잡고 걸어가는 일에 가깝다.

물론,
그러한 '손잡기'가 꼭 영원히 이어지는 건 아니다.
시절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귀를 기울여주고,
그러다가 또 시절과 함께 떠나보내는 일이 오히려 더 잦다.
그럼에도 그 시절은
그 사람들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는 걸 여러모로 느끼게 된다.
더 이상 잘 연락하지는 않지만, 내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학교 사람들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그들을 좋아했는지를,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다.
그 시절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또 지금에는 그 이전에 없던 사람들이 서로 기댈 어깨가 되어주고,
들어줄 귀가, 때론 토닥여줄 손길이 되어준다.

삶이란
홀로 고고히 서있는 바탕 위에서
타인들과 적당히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절실히 타인들에게 기대어 있는 것이고,
매시절마다 있는 그 몇 사람 때문에
그 시절이, 그 시간이 살아지고, 정의된다.
영원한 인연은 없기에 그들 또한 곧 멀어질 테지만,
그래도 한 시절을 그들에게 의지하며
돌다리를 건너가는 것만은 확실하지 않나 싶다.
나라는 존재라는 배를 타고 인생을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절마다 각기 다른 타인이라는 배를 건너 타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자아'의 확고함을 너무 믿도록 길들여져서
이런 생각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아마 그런 자아는 환상일 것이다. 그런 자아는 없다.

내가 당신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
그렇게는 삶 자체가 성립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절실한 인정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의존하고,
또 타인이 나에게 의지하는 일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이 시절 같은 배를 탔고,
서로에게 의존하도록 되었으며,
그리하여 이 시간을 살아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절이 지나면 또 당신을 다른 곳으로 떠나보낼 것이다.
물론,
세월이 흘러도 끝까지 곁에 남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아마 더 특별하기도 할 것이다.
친구이든, 가족이든 말이다. 그에 관해서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보다 광대하리만치 관계적이어서,
이 시절 내가 기대고 있는 당신들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고 믿게 된다.
나를 있게 했던 그 모든 사람들이 종종 생각난다.
그들이 곧 내 삶이었고, 나였던 것이다.
그 외에 별도의 나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남긴 글들조차
그 글들이 닿은 당신들에 의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매시절마다 다른,
그 당신들에게 말이다.









- 출처: 정지우 작가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
- 사진출처: https://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