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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돌봄] 얼마나 많이 일으켜 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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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27회 작성일 23-05-0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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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이 일으켜 세웠을까


- 류시화



인간을 창조한 이는 혼자 설 수 있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일으켜 세웠을까
아마도 수만 번 넘게
등 뒤에서 겨드랑이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쓰러지면
또 일으켜 세웠을 것이다
처음에는 속절없이 무릎이 꺾였을 것이다
두려움이 그를 계속 주저앉혔을 것이다
연약한 척추 마디들은 머리와 생각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 붙잡고 간신히 일어서도
몇 걸음 못 가
스스로에게 떠밀려 휘청거렸을 것이다
사소한 감정 변화에도 똑바로 설 의지 꺾였을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옹이처럼 복숭아뼈 생겨나고
희망의 넓적다리와 절망의 정강이 사이를 단단한
무릎뼈가 감쌌을 것이다
슬픔에 잇달아 무너지면서 슬관절의 유연함이 커지고
다시 일어설 때면 이마에
기쁨의 바람 스쳤을 것이다
달렸을 것이다 발목 붙잡는 과거의 손목 뿌리치고
고뇌의 머리카락 끊어 내고
맨발로 선 삶이 그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불완전한 영혼에 수직의 빛 스며들었을 것이다

이 길 어디에선가
내 안의 내가
자주 무릎 꺾여 주저앉고 싶을 때면
수만 번 넘게 인간을 일으켜 세운 이를 생각한다



* 출처: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시집



(사진출처: gettyimag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