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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돌봄] 누구나 다 고장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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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4회 작성일 23-05-0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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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일자 정지우 작가 산문


아마 인간의 마음은 다 고장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누구에게나 다 고장난 지점이,
고장난 방식이 있을 듯하다.
아마도 완벽히 '정상'인 사람은 없고,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크고 작게 고장나 있다는 게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각자 '버튼'이 눌리는 지점이 있어서,
이상하게 분노하고, 사소하게 뒤틀리며, 과도하거나 지나치다.

유행하는 한 심리학 유형론에서는, 인간을 '회피형'과 '불안형'으로 나눈다.

회피형 인간은 문제를 자꾸 직시하거나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딴청 피우듯 회피를 한다.
가령, 연인 간이나 부부 간에 제대로 마주앉아 이야기해야만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이를 제대로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해야하는 순간이 되면, 슬그머니 말을 돌리거나 도망치는 식이다.
회피형 인간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누적되게 만들어, 어느 날 이혼 서류를 갑자기 내밀거나 받고 만다.

불안형 인간은 온갖 것에 과도하게 불안해 하고, 수시로 너무 많은 걱정에 시달린다.
아주 극단적으로는, 배우자가 이성 친구를 만나기만 해도 바람을 피울 거라고 불안에 떠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배우자가 집에 돌아오면, 자신의 불안에 대해 솔적히 터놓기 보다는 다짜고짜 화를 낼 수 있다.
불안은 너무 쉽게 분노와 규탄이 된다. 정당하게 분노하기 보다는,
불안을 가눌 수 없어서, 억지스러운 당위를 가져온다.
당신은 어기지 말아야 할 것을 어겼다고 규탄하지만,
실은 그냥 내가 불안한 것 뿐이다.

꼭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 미묘하게 고장나 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에 대해, 자기가 사는 동네에 대해, 학벌에 대해, 외모에 대해 지나친 피해의식이 있다.
혹은 지나치게 욕구불만이 있어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혹은 습관적으로 타인을 미워하거나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
때로 우리는 마치 완벽한 '정상인'이 있거나, 완전하게 '안정적인' 어떤 사람이 있을 거라고,
이를테면, 완벽한 심리학자나 성직자 같은 존재가 있을 거라 믿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수시로 '불길한' 기분에 휩싸이는 편이다.
반대로 약간 지나칠 정도로 좋은 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 모든 건 미래에 대한 감각 같은 것인데, 나는 어느 쪽으로든 과잉을 잘 느끼는 편이다.
청년 시절에만 해도, 이런 과잉이 무슨 진리에 대한 계시라도 된다고 믿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든지,
좋은 예감은 반드시 실현된다, 라든지 같은 엉뚱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그게 다 그냥 기분의 문제라는 걸 알고 있다.
기분은 기분일 뿐,
나에게는 그와 별개의 진실이, 현실이,
책임과 의무가, 해야할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뿐이다.

나는 아마도 누구나 고장난 장난감 같은 영혼을 갖고 태어날 거라 생각한다.
관건은 그 장난감을 완벽하게 고칠 수 있다는 환상을 깨고,
어떻게 하면 적절히 그때그때 조금씩 고쳐가면서,
이를테면, 헝겊으로 기워내듯이 살아갈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 중에는 단지 자기에게 보다 잘 맞는 '고치는 비법'을 잘 익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정도가 있지 않나 싶다.
매번 고치면서 살아가기, 라는 이 과제를 죽을 때까지 잘 수행하는 것,
그게 사실상 삶의 과제이기도 한 셈이다.



출처: 정지우 작가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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