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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돌봄] 타인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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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23-04-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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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작가 2019년 10월 31일자 산문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 중 하나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히스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특정하긴 어렵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타인의 고통이 말해지는 것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그들은 그저 타인이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을 뿐인데도, 그것을 마치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입장의 고통을 말했다는 이유로 나의 '적'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 사회에 살아가는 거의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육아를 하든, 회사에서 일을 하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든,
응급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든,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든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고통이 있고,
그런 고통은 인간으로서 공감할 필요가 있는 이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어떤 고통은 더 불합리하거나, 더 차별적이거나, 더 열악해서, 더 많은 공감을 때론 필요로 한다.

그런데 누군가의 고통에 관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든지, 그런 것으로 고통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든지,
그런 고통은 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든지 하는 식의 태도가 무척 보편화된 듯하다.
나아가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말하면, 그 고통 자체를 거짓이라 여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통을 가장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고통을 말하면 이익이 되고, 그렇게 그들의 이익은 나의 손해가 되며,
그렇기에 타자의 호소는 그 자체로 나에 대한 공격이라 믿는 것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식의 태도 혹은 세계관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은 어딘지 뼈아픈 데가 있다.
사실 모든 삶은 저마다의 고통이 이해되길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고통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해되길 바라고, 받아들여지길 바라고,
적어도 누군가 듣고 공감해주길 바란다.
사실, 그런 행위와 기대야말로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발달시켜온 가장 값진 능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며, 위로하고,
설령 내가 당신이 될 수는 없을지언정, 또 당신이 내가 되어줄 수는 없을지언정,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삶을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삶의, 관계의, 사회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이야기 장르의 근본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사실 타인의 고통에 관해 공감하는 일은 전혀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택시 기사의 어려움이든, 톨게이트 노동자의 절박함이든, 육아를 하느라 커리어를 잃은 여성의 고통이든,
취업전선에서 청년들이 겪는 불안이든, 홀로 사는 노인의 외로움이든
그들의 어려움을 그저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해서 나의 삶이 나빠질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타인의 고통 앞에서 히스테리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그들 또한 제대로 스스로의 고통을 이해받은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해받은 적 없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넘쳐나는 공격성, 부당한 혐오, 타자에 대한 잔인함과 냉소 자체들이
어쩐지 쓸쓸한 분노를 느끼게 한다.
가끔은 그들도 인간인가 싶다. 그렇게 이해심이 없는가, 타인의 고통이 그렇게 견디기 힘든가 싶다가도,
그 누군가는 정말로 그토록 타인의 고통이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타인에 대한 폭력을 결코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것을, 더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는 요구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때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너무 많은 고통들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 좋을지 꽉 막힌 채로 멍해질 때가 있다.
이 넘쳐나는 고통들을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좋을지도 그저 막막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저 하나 확신하게 되는 것은 누구의 고통에 대해서도
쉽사리 평가절하하거나, 멸시하거나, 우습게 여겨선 안되리라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참으로 예민하게, 무척 힘든 시절을, 겨우 견디듯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그런 고통이 이해받고, 말해지며,
단지 어떻게든 줄어드는 일일 뿐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이다.



출처: 정지우 작가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




(사진출처: gettyimag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