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나눔터

[마음돌봄] 봄날의 햇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6회 작성일 22-08-16 14:53

본문

드라마 '우영우'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권민우를 미워하고 최수연을 좋아하게 된다.
양자 중 어느 쪽이 당신과 더 가깝느냐고 물으면,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수연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절대다수가 최수연 보다는 권민우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30명이 있는 반에서 왕따가 한 명 생기면, 일부는 주도적으로 왕따 시키고, 나머지 대부분은 방관하거나 묵인한다.
그 중에 최수연이나 동그라미처럼 왕따 편에 서는 사람은 극소수다.

살아오면서, 유난히 약자의 곁에서 그를 다정하게 품어주는 소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소수를 배제하는 일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참여한다.
심정적으로는 '봄날의 햇살' 편이지만, 실제로 봄날의 햇살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영우처럼 귀여운 대상이 곁에 있다면 누구나 도와주겠다고 마음 먹지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아름답거나 귀엽지 않다.
그리고 도움에는 늘 어느 정도의 희생이 따른다.

나는 어릴 적에, 왕따를 도와주어 본 일도 있고, 그랬다가 같이 미묘한 왕따의 위치에 선 적도 있고, 왕따에 참여해본 적도 있다.
그 일이 모두 한 해에 일어났다. 처음 한 학기 동안, 나는 그 왕따 아이에게 잘해주었다.
그것이 문제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작고 하얗고 통통했던 그 아이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괴롭히는 대상이었는데,
그 아이는 나를 따라다니며 나에게 의지하곤 했다.
나는 그 아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같이 밥도 먹고, 놀기도 했다.
그랬더니 한 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나도 반에서 은따 비슷한 입장이 되어 있었다.

그 상황이 내게는 무척 낯설고 괴로웠던 것 같고, 어느 순간, 나는 그 아이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그 아이 '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냉정하게 대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그 아이를 따돌리는 나머지 아이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그 아이 편이 우리 반에서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반에 봄날의 햇살은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본 다른 왕따를 당하는 아이 곁에 역시 봄날의 햇살은 없었다.
나도 봄날의 햇살이 되어주지 않았다.

권민우는 경쟁 상대인 우영우에게 이기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를 쓰는 천하의 악역으로 묘사되지만,
그렇다고 나는 최수연 같은 선역 또한 드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오히려 그런 적극적인 악역도 선역도 아닌 무관심의 태도, 그러나 차별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한 타인이 입는 피해는 용인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마음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태도는 우영우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살피고자 하는 최수연 보다는
우영우의 어려움에 무관심한 권민우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대립은 적극적으로 타인을 해하려는 마음과 도우려는 마음의 대립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무관심과 관심의 대립이 가장 큰 대립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의 이준호, 동그라미, 최수연 같은 인물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우영우를 도우려 한다는 점에서 기이하다.
우리 시대는 오히려 무관심의 시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괜히 타인을 도와주었다가 역으로 어떤 곤란을 겪을지 몰라, 어려운 사람은 '지나치는 게 상책'이라는 게 상식이 된 사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것은 나에게도 이미 익숙해져버린 '방어적인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에, 각각의 인물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넘어서있다.
그들은 타인에 대해 적극적이고, 타인의 삶에 나서서 손을 내민다.
마치 식물에 에너지를 내어주는 태양처럼, 햇살처럼, 그렇게 타인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내가 지속적으로, 아파트 페인트 떨어져 나가듯 조금씩, 잃어왔던 태도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되었지만, 다음 과제는, 어떻게 다시 햇살 같은,
그런 어린 시절의 마음을 되찾을 것인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처: 정지우 작가 페이스북 (facebook.com/writerjiwoo)]



(사진 출처: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