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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돌봄] 늦음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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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26회 작성일 22-07-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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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음의 이유 - 류시화

모든 것에 늦는다.
글 쓰느라 늦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침 먹는 것도 늦고, 점심도 저녁도 거의 매일 늦는다. 문장 하나 고친다고 중요한 약속에도 늦고,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에 답하는 것에는 더 늦고(일 년 만에 답장한 적도 있다), 독자의 감동적인 독후감에 반응하는 것도 늦다(무감동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구근들 얻어다 놓고 한 달씩 신문지에 싼 채 두어 다 늦게 핀다. 나무백일홍, 천사의나팔 옮겨 심는 일도 달포 해포 늦어 계절을 놓치기 일쑤다. 그렇게 매사에 늦는 운명이다. 작가로 살아가는 이번 생에는.
대학 졸업식 전날 시 한 편 수정하다 새벽에 잠들었는데, 늦게 눈을 떠 허우적대며 학교로 올라갔더니(산 중턱이었다) 졸업식 벌써 파하고 꺾인 꽃들만 버려져 있었다. 첫 취직 시험은 정확히 24시간 늦어 마치 인생 시험에 떨어진 것만 같은 거부할 길 없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조차 난해한 시 쓰느라 모두 놓쳤다.
불빛도 없고 육지도 없는 거친 바람 속에서 흰 종이를 나 자신의 배로 삼아 표류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세상이 정한 시간에 잘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기억한다. 그 종이배가 어둠의 바다에 반쯤 잠긴 채로도 조만간 어떤 시가 탄생할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글자의 삐침을 노 삼아 단어와 문장을 저어 나갔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좋은 시는 천천히 나타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으니.
나의 늦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대여, 나는 그대의 빠름을 따라가야 할 의무가 없다. 내가 이해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의무가 그대에게 있지 않듯이. 다만 신이 나의 늦음을 이해하면 된다. 그냥 늦으면 게으름이지만, 신의 이해 속에서 늦으면 그때의 늦음은 은총이니까.
나 자신이 진정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도 나처럼 예술에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시간에 맞춰 경외감을 느끼며 살아나가면 된다. 삶을 산다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구슬들을 하나씩 주워 실에 꿰어 나가는 것과 같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당신은 무슨 이유로 늦는가? 어떤 것에 열중하느라 세속적으로 중요한 일들 미룬 채 진실한 열망에 확고히 기반을 두고서 다섯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혹은 열흘이고 스무 날이고 구슬땀 흘리며 구슬 꿰는 일에 몰입하는가? 걱정하지 말라, 그것은 결코 질식 상태가 아니니, 당신은 깊이와 의미를 느끼며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이고 자신의 폐에 맞는 산소를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건대 당신은 안전하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욕망 이론에서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대개 진실로 우리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라기보다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우리 역시 욕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나의 욕망이 진실로 내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주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라캉은 말한다. 내가 지금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나라는 주체의 본질적인 욕망인지 아니면 허구의 대상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주체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늦는 사람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살아간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눈에는 미적대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 나는 책상 앞에서 한없이 미적댄다) 그 자신에게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겉치레가 아니라면 그의 늦음은 그냥 느림이 아니다. 그는 자신만의 기준 속에서 이 순간에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순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성취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늦게 피는 꽃은 없다. 제주도의 늦반딧불이는 가을에 어둠을 수놓는다.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는 시인이 존재하지만, 그 시인은 젊어서 죽고 사람들은 더 오래 산다.'라고 프랑스 시인 생트 뵈브는 말했다. 바라건대, 당신 안의 시인은 더 늦게 죽기를. 당신만의 기쁜 상상 속에서 미적대느라 부정적인 생각과 미래에 대한 염려에는 늦기를. 자기 확신을 가지고 세상의 소란에 맞서서 그 늦음의 인간다움을 지키기를.
나는 매사에 늦으니 불행과 고통에도 조금 늦기를. 죽음은 빨리 오든 늦게 오든 상관하지 않는다, 라고 '멋지게' 말하지만 솔직히 죽음에도 조금 많이 늦기를! 불후의 명시를 남길 때까지.
하지만 세 가지에는 늦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희망을 품는 것에는 늦지 않아야겠다. 미명을 헤치며 걷는 새벽 산책에는 늦지 않으리라. 그리고 언제나 놀라운 삶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에는 더 이상 늦지 않으리라.

artwork_Nishishuku


(출처: 시인 류시화 페이스북 페이지)